창간호 주제는 “참조와 인용”입니다. 국문학자 김윤식은 “근대 문학은 이식된 문학”이라는 일제 강점기 평론가 임화의 단언을 극복하는 것을 일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회고했습니다. 1972년 김현과 함께 펴낸 『한국문학사』 등이 그 결과물이지요. 모두가 공유하는 매체로 시대의 공통된 감각을 빚어내며 모종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근대 문학의 소명으로 여겨졌기에, 이것이 외부에서, 그것도 식민세력의 틀을 통과해 이식된 것이어서는 곤란했습니다. 문학을 건축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근대 건축은 이식된 건축이다”라는 명제는 불안과 불편함을 거의 야기하지 않습니다. 근대 건축, 또는 현대 건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놓고 종종 화해할 수 없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생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는 드뭅니다. 식민지시기 전후에 지어진 절충주의식 건물이든 해방 후 본격적으로 유입된 모더니즘 건물이든 그것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었으니까요. 자연스레 근대 건축의 중심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김중업과 김종성의 신화와 유산은 그들이 각각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직접 사사했다는 사실에 절대적으로 기대지요. 유럽과 미국(그리고 암묵적인 참조체로서 일본)과 한국 사이의 시차는 한국 건축의 주요 동력원이었습니다.
반면 좀처럼 전면에 드러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지어진 현대 건축물입니다.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에서 선배와 스승의 작업을 명시적인 참조점으로 삼는 일이 드물었고, 동시대 한국 비평가나 이론가의 글이 실천을 촉발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너무 흔해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다세대 다가구, 상업시설 등에서 창작의 모티프를 얻는 일군의 건축적 경향이 미약하지만 뚜렷하게 감지됩니다. 창간호는 이 흐름을 짚어보고자, 참조와 비참조 사이의 다양한 입장과 전략을 다루었습니다.